2023. 2. 6. 16:37ㆍMovie_영화후기
애프터썬, 요즘 A24에서 배급하는 영화가 눈에 띈다. 작년에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그리고 <애프터양>도 A24에서 배급했고, <문라이트>와 <플로리다 프로젝트>, <미나리>도 A24에서 배급을 맡은 작품이다.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가진 웰메이드 영화를 배급하고 있어 꽤나 관심이 가는 배급사이다. 그래서 여러 소셜미디어 채널을 팔로우하고 나오는 영화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거기에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2023년 처음으로 만점을 준 영화라니, 뒷구르기하면서 봐도 내 취향일 게 분명해서 주말에 후다닥 보고 온 영화, 애프터썬.
애프터썬,
어른이 된 소피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애프터썬은 소피가 11살 무렵 아빠와 단 둘이 떠났던 튀르키예 여행의 순간들을 주로 보여준다. 스코틀랜드 출신 감독 샬롯 웰스의 어린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11살 소녀의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어린 아빠 캘럼과 나이에 비해 조숙한 11살 소녀 소피는 튀르키예로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 아빠 캘럼은 소피의 엄마와 이혼했고 무슨 이유에선지 고향인 스코틀랜드를 떠나 잉글랜드에서 살고 있다. 스코틀랜드와는 다른 뜨거운 햇살이 있는 튀르키예의 하늘은 푸르고 아름답다. 더블베드인 줄 알고 예약했던 리조트 객실에는 침대가 하나뿐이다. 그저 그런 리조트에서 소피와 캘럼은 타오르는 햇빛 아래애서 같이 수영을 하고 음식을 먹고 며칠간의 여름휴가를 보낸다. 캘럼과 소피는 캠코더로 여행을 기록한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소녀의 시선으로 남자와 여자가 함께 노는 모습을 본다. 캘럼에게 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소피는 알고 있다. 어색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소피와 캘럼은 즐겁게 아빠와 딸 둘만의 여름 휴가를 보낸다. 그리고 공항에서 헤어진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사랑을 담은 인사를 캠코더에 담은 캘럼은 문 밖으로 사라진다.
애프터썬에는 여러 시점이 존재한다. 11살 소피의 눈으로 본 아빠 캘럼과 현재의 소피가 회상하는 그 당시의 아빠의 모습이 교차한다. 소피와 캘럼이 함께 하는 튀르키예의 풍경은 작렬하는 햇빛 속에서 선명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캘럼이, 소피가 튀르키예 여행을 하면서 서로를 찍었던 수십년 전 흐린 화질의 캠코더 영상이 교차한다. 그 여름날의 튀르키예의 부서지는 물결처럼, 파란 하늘을 빙글빙글 돌던 패러글라이딩처럼 현재의 소피는 11살의 소피의 시점으로 아빠를 보고 현재의 소피는 그때의 소피와는 다른 감정들을 떠올린다… 아마도.
감정들,
이 영화는 특이하다. 나는 소피이며 동시에 캘럼이다. 아버지 캘럼의 나잇대의 내가 딸인 소피의 시선으로 캘럼을, 그 여행을 보게 되는 이상한 영화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딸인 소피를 보호하고 책임지려고 하지만 캘럼은, 30살은, 아니 어떤 나이든 인간은 어리고 여린 부분이 있다. 다만 11살의 어린아이는 그걸 모를 뿐이다. 아직 어린 소피는 30살을 어른을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캘럼은 11살 소녀의 아버지이기에는 너무 어렸고 우울했다. 소피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부족하기만 하다. 돈도 여유도 시간도... 어린날의 소피는 어렴풋이 알았을 수도 있지만, 아니 소피는 몰랐다. 마지막까지 해맑다. 30살의 내가 보는 캘럼은 부서지는 햇빛 속에서 한 없이 부서지고 있다. 그리고 땅을 밟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추락하는 기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치 지금 30살의 나처럼 말이다. 어디에도 소속하지 못한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말이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얼굴도 성격도 성향도.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과 나를 보고는 나에게 엄마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그렇게 아빠만을 닮았다. 어린 시절에는 그게 참 싫었다. 가족들에게 그렇게 살갑지도 헌신적이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던 아빠는 나에게 부정적 준거 집단의 표본이었다. 아빠를 닮고 싶지 않았고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그렇게나 아빠를 닮은 부분들이 점점 더 커지면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더 아빠를 이해하게 됐었다. 그리고 그 때의 아빠를 생각하면서 지금의 나를 이해하곤 했다. 종종 내 나잇대의 아빠를 떠올리곤 한다. 어린 시절 이해 못했던 아빠의 행동들을 자꾸만 생각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나 싫어했는데도 말이다.
애프터썬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 딸과 아빠의 여행을 보여주면서 여러 감정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냥 여러 감정이 떠오른다. 물결처럼 햇살처럼..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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